Thursday, June 4, 2026

[임인철 목사 칼럼] “두 개의 현장, 두 개의 나라”

인기 칼럼

 

라스베가스중앙교회 임인철 담임목사.

캄보디아 선교의 여정 속에서, 저는 오늘 하루 동안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두 가지 영적 풍경을 목격했습니다. 오전에는 인간의 죄가 빚어낸 가장 참혹한 심연을 보았고, 오후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피워낸 가장 찬란한 생명의 소망을 보았습니다. 이 강렬한 대비는 제 영혼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켰으며, 복음이 왜 이 땅의 유일한 소망인지를 뼈저리게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오전에 발을 디딘 곳은 ‘뚜엘 슬렝(Tuol Sleng)’이었습니다. 폴 포트라는 한 인간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광기 어린 집착으로 세운 거대한 학살의 현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목격한 인간의 잔혹성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개혁주의 종말론이 경고하듯, 인간의 전적 타락과 죄의 최종 결정은 결국 ‘죽음’이었습니다. 자신이 역사의 신(神)이 되려 했던 한 독재자의 횡포 아래, 수많은 영혼이 무참히 짓밟히고 고통 속에서 숨져갔습니다. 그곳에 남겨진 빛바랜 사진 속 죽어가는 이들의 눈빛은,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주인 되려 하는 인간의 나라가 얼마나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는지를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사탄의 통치 아래 있는 세상은 이토록 잔인하게 영혼을 파괴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오후에 방문한 ‘쁘렉끄럭빠으 중앙은혜교회’의 풍경은 전혀 다른 나라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거룩한 열심으로 뜨거운 현장이었습니다. 오후 내내 땀 흘려 선물을 포장하는 선교대원들과 현지 사역자들의 손길에는 피비린내 나는 폭력 대신,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뛰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남을 죽이는 자의 영향력 끝에는 시체와 통곡만이 남았지만, 자신을 드려 단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은 이들의 영향력 아래에는 전혀 다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선물이 포장되고 사랑의 향기가 퍼져나가자, 온 동네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교회 마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의 공포가 지배했던 이 땅에서, 아이들의 입술을 통해 맑은 웃음소리와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기뻐하는 아이들의 얼굴 속에서 저는 보았습니다. 폭력과 총칼로도 결코 세울 수 없었던 진정한 평화의 나라가, 낮아짐과 섬김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이 가난한 마을에 이미 임하고 있음을 말입니다.

이 극명한 대비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누구의 영향력 아래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나라를 이 땅에 증거하고 있습니까?” 죄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네가 주인이 되어 네 세계를 구축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 끝은 뚜엘 슬렝의 처참한 폐허처럼 영적 죽음뿐입니다. 반면,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사랑에 붙들린 인생은, 척박한 사막 같은 땅에 쁘렉끄럭빠으 중앙은혜교회와 같은 생명의 오아시스를 만들어냅니다.

오전의 통곡이 오후의 찬양으로 바뀌는 것을 보며, 저는 이 선교지 땅에,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온 세상에 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더욱 격렬하게 증거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참된 생명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이자 마땅히 가야 할 종말론적 성도의 길입니다.

어둠이 깊은 곳에 빛은 더 밝게 빛납니다. 캄보디아의 붉은 땅 위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들이, 저 밝게 웃는 아이들의 미래 속에서 마침내 찬란한 하나님 나라의 열매로 맺히기를 눈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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