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도들로부터 종종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는 서로 차이점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그 차이를 아는 성도들도 있지만, 많은 성도들이 차이점을 모르고 양자를 동일시하고 있는 것도 또한 오늘의 현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혁주의(Reformed Theology)와 복음주의(Evangelicalism)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칼빈주의(Calvinism)로도 일컬어지는 개혁주의는 16세기 종교개혁과 함께 태어난 신학이다. 종교개혁은 부패한 로마 카톨릭에 항거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기치를 들고 일어났다. 따라서 개혁주의는 성경의 완전 무오성을 믿고 성령으로 영감된 성경의 신적 권위를 우선적으로 앞세운다. 또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인간 구원을 믿는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어거스틴의 신학을 계승하여 칼빈이 체계화한 개혁주의는 신학 뿐만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전 분야에 하나님의 주권이 통치됨을 믿고 구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신학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들 자신을 개혁주의자임과 동시에 복음주의자로 불렀다. 구 프린스톤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였던 벤자민 워필드는, “종교개혁은 곧 복음주의 운동(Evangelical Movement) 이었다. 칼빈이 개혁주의 신학을 조직적으로 저술한 ‘기독교 강요’(The Institute of Christian Religion)는 복음주의 신학의 요체였다” 고 증언 했다. 워필드의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개혁주의와 초기 복음주의는 양자가 동의어로 사용될 만큼 동일체로서 “성경적 기독교로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Come into its own) 신학”이었다.
그러나, 후기에 와서 복음주의는 초기와는 좀 다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원래 초기 복음주의는 17세기 후반 독일 루터교회의 “죽은 전통”에 불만을 가진 신도들이 시작한 경건주의(Pietism) 운동에서 출발했다.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던 스페너와 프랑케는 신앙적 체험과 열정, 신앙의 생활화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경건주의 운동은 때마침 18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신학적 자유주의(Liberalism)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응했다. 경건주의 운동은 영국으로 확산되어 영국의 웨슬리 감리교 운동에 영향을 끼쳤고 유럽 복음주의의 시발점이 되었다. 유럽 복음주의 운동은 그 후 대서양을 건너와서 미국 복음주의 운동의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런데, 개혁주의와 신학적 동질성을 가졌던 초기 복음주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점차 폭넓은 포용주의(Inclusivism) 형태로 나아갔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융합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후기 복음주의에는 여러가지 신학적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 후기 복음주의는 신학적으로 다양한 교파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신학적 불일치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예를 들면 감리교에서 하나님의 선택 교리를 부정하고 침례교에서는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등 내부적으로 신학적 통일을 이룰 수 가 없었다. 그리하여 후기 복음주의는 포용주의 노선을 걷게 된 것이다.
성경의 절대 권위에 대한 이견도 드러났다. “성경 속에 하나님 말씀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 속에 하나님 말씀 아닌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성령이 역사하여 인간이 그 말씀에 은혜를 받을 때만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 된다 (이것은 성경의 객관성을 무시하고 주관성만 강조하는 말이다)”고 주장하며 성경의 완전 영감설을 부정한 칼 발트의 신정통주의도 후기 복음주의에 속해 있다. 유신 진화론을 믿는 영국 복음주의 신학자 앨리스터 맥그래스는 구 프린스톤 신학자들(하지, 워필드, 메이첸, 반틸)의 성경무오설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기독교 상담 분야에서도 딤후 3:16-17과 벧후 1:3에서 밝힌 성경의 충족성(The Sufficiency of Scripture)을 부정하고 성경이 상담에 불충분하다고 해서 불신 세속주의 치료법을 정당화했다. 이와 같이 후기 복음주의 신학은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여 물량적 교회성장 이론도 여과없이 수용했다. 자유주의 신학자, 세대주의자, 천주교, 유대교 신학자들과도 긴밀한 연대를 형성했다.
원래 초기 복음주의는 성경의 유기적 영감설과 축자 영감설을 받아 들였다. 그러나 후기 복음주의자들 중 다수가 성경의 기본 사상이나 핵심만 영감되었다는 “사상 영감설”을 수용하고 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가르치는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도 후기 복음주의에서는 부정되고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인간의 원죄를 부정하고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알미니안주의 요소들이 상존하고 있다. 개혁주의는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 구원받는 길은 오직 은혜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만 온다는 하나님 독력주의(Monergism)을 가르친다. 이는 구원의 주체가 오직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이에 반하여,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은혜가 합력하여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신인합력설(Synergism)을 주장한다. 이는 구원의 주체가 나의 결심이다. 이 사상이 후기 복음주의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 논란을 일으킨 소위 “바울 신학에 대한 새 관점 학파”의 “유보적 칭의론”도 이신칭의 교리를 부정하고 행위 구원을 강조하면서 알미니안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선교에 있어서도 “성경적 복음전도 우선 신학”으로부터 근래에 와서 많이 벗어난 로잔(Lausanne) 운동, WEA 단체도 후기 복음주의 운동의 주축을 이루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현실들을 볼때, 개혁주의 신학의 수호 없이는 복음주의 신학도 쇠퇴하고 변질될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인식하게 된다. 사도 바울-어거스틴-칼빈으로 체계화 되고 계승되어온 역사적 개혁주의는 언제나 성경적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신앙을 추구해 왔다. 정확 무오한 성경만이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지침과 법칙으로 믿으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이 성경을 가장 정확하게 총괄적으로 해석한 것임을 수용하고 따르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찬양하며 모든 영광을 오직 만유의 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개혁주의 신앙의 본질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36에서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For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to Him are all things. To Him be the glory forever. Amen!”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