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을 살다 보면 내 마음을 붙들어 주던 인생에서 기독교세계관의 그 어떤 문장들이 어느날 갑자기 힘을 잃는 때가 있습니다. 나의 신체적 건강이 흔들리고, 사회에서 서로 관계가 무너지며, 경제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손실이 찾아오면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조용히 고개를 듭니다. 그때 우리를 지키는 것은 어느 한 순간의 기분보다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배워 온 복음과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기독교 교리’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성도는 두꺼운 책과 어려운 용어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칼빈과 개혁신학에서 교리는 삶과 동떨어진 어떤 지식의 창고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나는 누구이고,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이루셨으며, 성령께서 그 은혜를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하시는지를 질서 있게 고백하는 교회의 언어입니다.
진리는 서로 흩어진 조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인간의 실상을 드러내고, 인간의 비참은 중보자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며, 그리스도의 구속은 성령의 적용과 교회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이 질서가 무너지면 신앙은 한때의 감동이나 개인의 취향으로 흩어지기 쉽습니다.
교리를 배운다는 것은 모든 질문에 정답을 갖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생각과 내 감정이 복음의 더 큰 질서 안에서 제자리를 찾도록 훈련받는 일입니다. 고난속에서는 섭리를, 죄책 속에서는 칭의를, 무기력 속에서는 성화를, 외로움속에서는 교회를 다시 배우고 생각하게됩니다.
성도에게 신학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양식입니다. 바른 교리는 우리의 머리를 높이는 지식이 아니라, 무릎을 꿇게 하고 이웃을 섬기게 하며 세상 속에서 바르게 살도록 이끄는 복음의 골격입니다. 우리는 이 골격 위에 믿음과 삶을 차분히 세워 가야 할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나는 교리를 지식의 장식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삶을 세우는 고백의 질서로 받습니다.”라고
신앙과 삶이 따로 움직이는 각각의 한 영역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 문제를 하나님의 성품, 그리스도의 은혜, 성령의 도우심, 교회의 공동체과와 연결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신앙을 몇 개의 감동적인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복음의 전체 적인 질서 안에서 살고 있는가?
주님, 진리의 하나님, 제 생각과 삶을 복음의 질서 안에 신행일치의 삶으로 바로 세워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