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누군가 이렇게 물을 때 선뜻 “예,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고도 할 수 없어 멈칫하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상태, 나를 둘러싼 주변환경, 인간관계 등을 생각하면 마음이 여전히 무겁기 때문입니다.
행복지수가 꼭 소유나 외부 환경에만 달려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해와 같은 세상을 살면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행복해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웃을 때도 슬픔의 그림자가 마음 한쪽에 드리우고, 함께 웃다가도 한숨짓게 됩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불꽃이 위로 올라가듯 인생이 고난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에서 환난을 겪는다고 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는 역경 가운데서 “나는 행복하다“라고 간단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세상에서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무소유의 행복을 누린다 해도 참 행복은 없습니다. 단지 그렇게 느끼려고 애쓸 뿐입니다. 행복은 입산수도하여 고행이나 수련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눕지 않고 좌선을 해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인생은 스스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 불행한 것은 근본적으로 죄 때문입니다. 죄는 악이요 고통입니다. 죄인은 근본적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죄 사함을 받은 의인만이 기뻐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께서 흘리신 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언약의 피, 속죄의 피입니다. 죄 사함을 얻고 행복해지는 길은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 사함의 기쁨, 진정한 행복을 날마다 누려야 합니다. 성찬의 은혜에 감사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죄 용서받은 자를 그 누구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던 담이 무너졌습니다. 불행은 끝났습니다. 행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태복음 2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