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15, 2026

[박헌승 목사 칼럼] “나의 머리 둘 곳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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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승 목사(캐나다 서부장로교회)

오래된 복음성가 한 소절이 문득 마음을 두드립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젊은 시절의 노래이지만 오늘 따라 내 마음에 더 깊이 머뭅니다.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다는 고백은 단순히 세상이 싫다는 뜻이 아니라, 땅에 미련을 두지 않는 믿음의 자세를 말합니다. 정들 수 없는 곳에 사니 때로는 세상이 낯설고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정상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의 사람에게는 정상적인 감각입니다. 우리는 본래 이 땅에서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원해서, 어디든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한 서기관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예수님을 따르면 편안함과 성공이 보장될 것이라는 착각을 깨뜨리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 둘 곳은 이 땅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의가 넘치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머리 둘 곳이 없다던 예수님은 풍랑이는 갈릴리 바다 한복판에서 배 고물에 베개를 베고 주무셨습니다. 파도가 치는 자리라도 아버지와 함께하는 곳이 곧 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환난과 풍파가 많은 이 세상에 살지만,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이기에 마음은 천국의 평안을 누립니다.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나는 이 세상에서 이방인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이 땅에서 지나가는 ‘킹덤 순례자(Kingdom Pilgrim)‘로 살았습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습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받은 자로 사명을 따라 살아갈 뿐입니다.

오늘, 나는 어디에 머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머리 둘 곳이 곧 나의 머리 둘 곳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태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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