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시편을 읽어 내려가다 한 구절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의 티끌도 은혜를 받나이다”(시편 102:14)
이 시편은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벽이 바벨론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 있는 절망의 시기가 배경입니다. ‘돌’과 ‘티끌’은 화려했던 성전이 무너져 내린 참혹한 ‘폐허의 잔해’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짙은 절망 속에서도, 정하신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시온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화려하고 온전한 성전뿐만 아니라, 무너져 가루가 된 그 ‘티끌’ 위에도 은혜를 덮어 새로운 창조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삶이 산산조각이 나고, 내 존재가 그저 먼지처럼 허무하게 흩날리는 것만 같은 순간 말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낮아질 곳 없는 철저한 파괴의 바닥이, 역설적이게도 은혜가 시작되는 자리가 됩니다.
놀라운 것은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무너진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한다”고 고백합니다. 소중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이 영광스러울 때만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내 곁의 지체가 상처받고 공동체가 초라해졌을 때, 비난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그 흩어진 재마저 끌어안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을 품은 참된 종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사순절, 나를 돌아봅니다. 현재 내 삶의 어떤 부분이 티끌처럼 허물어져 내려앉아 있습니까? 하나님은 무너지고 먼지투성이가 된, 상한 모습 그대로를 십자가의 은혜로 받아주십니다. 티끌과도 같이 보잘것 없는 나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새 성전으로 빚어 주십니다. 이를 위해 몸소 피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 앞에 그저 뜨거운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무너진 티끌 위에도 임하는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성도님들의 상하고 깨어진 삶의 자리마다 따듯하게 덮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편 1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