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소가 밀했습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인내(忍耐)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인생의 수많은 고비에서 진정한 성공을 거두는 자는 인내하는 자입니다. 옛말에도 ‘참을 인(忍) 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을 만큼, 인내는 삶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도 인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은 인내하지 못할 때 겪게 되는 영적 비극을 잘 보여줍니다. 시내산에 올라간 지도자 모세가 더디 내려오자, 조급해진 백성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화려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돌판은 깨어지고 삼천 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이 기다리지 못했던 ‘더딤’의 히브리어는 ‘부쉬’입니다. 지체와 지연을 뜻하지만, ‘당황, 혼돈, 메마름’이라는 의미도 품고 있습니다. 조급하여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면, 영혼은 혼돈에 빠지고 메말라 분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당장 위안이 되는 ‘금송아지’를 좇다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조급한 자는 미련한 자보다 더 희망이 없으며 궁핍함에 이른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습니다(롬 5:3-4). 우리가 인내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믿음으로 기다리는 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에 ‘오래 참음’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응답이 지체되고 상황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그 메마른 ‘더딤’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조급함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응답이 내 생각보다 더딜지라도, 그 기다림의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믿음이 정금같이 빚어지는 은혜의 때임을 기억합시다. 묵묵히 골고다를 오르신 그리스도의 인내와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배우는 사순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하박국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