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따라 부모님이 보고 싶습니다. 아버님은 이미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기에, 아버님 사진 한 장을 가만히 꺼내어 봅니다. 사진 속 아버님의 눈빛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온기를 머금고 계십니다.
그래도 어머님이 아직 이 땅에 살아 계심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어느덧 아흔여섯 해의 성상을 지나오셨습니다. 기력은 쇠잔해지셨지만, 아직 이 세상에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멀리 계신다는 핑계로 늘 곁에서 모시지 못하는 송구함에, 가끔 보내오는 사진 속 여윈 얼굴을 마주할 때면 가슴 한편이 저려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오래된 노래가 있습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이라는 구절은 세대를 넘어 우리 모두의 눈시울을 적십니다. 효도란 언제나 ‘조금 더 일찍 했더라면’ 하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찾아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어머니는 열 자녀를 길러도, 열 자녀는 한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그 은혜는 하늘 아래 그 무엇과도 비길 데가 없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이 땅 위에 드리운 가장 온전한 그림자입니다.
문득 아버님의 무릎을 베고 누웠던 어린 시절의 평안함이 그립습니다. 이른 새벽, 새벽 제단을 쌓고 돌아오신 어머님이 제 머리에 살며시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시던 그 시간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때 제 이마에 닿았던 것은 서늘한 새벽 공기가 아니라, 자식을 향한 간절한 사랑의 온기였습니다. 잠든 척 눈을 감고 있었지만, 사실 저는 날마다 어머니의 그 따스한 기도를 기다렸습니다. 그 기도가 오늘 저를 살게 하는 힘이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효도의 기회가 남아 있다면, 오늘 건네는 전화 한 통과 “사랑합니다”라는 떨리는 고백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예배’가 될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부모님을 존경하고 축복합니다. 부디 강건하소서. 그 자리를 지켜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언2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