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주간을 앞두고, 다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향합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절기라는 익숙함의 베일을 벗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십자가 앞에 섭니다. 십자가의 도(道)는 머리에 머무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영원한 생명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2천 년 전의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닙니다. 영광의 주님께서 흉악한 인간의 죄를 온전히 짊어지신 구원의 현장이며, 유월절 어린양으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사랑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으셨지만, 우리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온갖 조롱과 멸시 속에서도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셨고, 마침내 승리하셨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으며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십자가 앞에 제대로 서 있는가?” 사도 바울은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빌 3:18)라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십자가의 원수란 교회 밖의 불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노래하면서도 정작 그 수치와 고난은 피하려 하고, 십자가를 외면하고 십자가 지기를 주저하며 세상과 타협하는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눅 9:23)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믿는 ‘구원의 사건’을 넘어, 우리가 매일 살아내야 할 ‘삶의 원리’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갈 2:20) 옛사람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세상을 향해 온전히 죽어지는 삶입니다.
이 한 주간, 예배당에 장식된 십자가를 넘어, 피 흘리신 고난의 현장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기도로 나아갑시다. 주님께서 외로이 걸어가신 그 좁은 길을 우리도 묵묵히 따라 걷기를 원합니다. 그 고난의 길 끝에는 찬란한 부활의 빈 무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의 승리로 뒤바뀌는 그 영광의 아침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십자가 앞에 나아갑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라디아서 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