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선교 사명에 최선 다할 것

이제 삼월이다. 겨우내 움추렸던 만물들이 새롭게 약동하는 계절이다. 또한 사순절 절기를 지내고 있다. 우리 신앙도 기지개를 펴고 새롭게 전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남가주 교계 언론사에 현역으로 있다가, 예비역으로 몇 년 동안 지내다가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미국 이민 생활하는 동안 남가주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이민 목회 현장에서 27년을 목회하면서, 미주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크리스천헤럴드 편집국장, 주필, 사장을 역임하고, 미주조선일보 종교부 기자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복음신문을 보다 활성화시켜 보려고 한다.
펜데믹 이후, 미주 한인교계가 위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계획은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를 향한 또 다른 섭리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한 아픔과 고난을 통한 새로운 소망을 주셨기에,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기도 한다.
부족한 사람에게는 잊을 수 없는 세 사람이 있다. 첫째는 초등학교 3학년 여름성경학교 때, 저를 고향 석곡교회로 인도해 주신 김정순 전도사님이고, 두 번째는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이었던 박석훈 국어 선생님이다. 세 번째는 공군 현역사병이 군복을 입고 신학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임명규 목사님으로 당시 공군 대위로 군종 목사였다. 용두산공원 부근 부산남교회에서 이근삼박사(복음대학교 초대학장 역임)께서 교장으로 있었던 고신 야간신학교였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린 소년이었던 저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고 진리의 길을 가르쳐 주셨던 여자 김 전도사님이 계셨기에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공군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공군에 근무하면서 야간 신학교를 다니도록 배려하고 길을 알려 주셨던 임 목사님이 계셨기에 목회자가 되었다. 또 박석훈 선생님은 ROTC를 전역하고, 도시에 있는 큰 학교가 아닌 시골 중학교로 발령을 받아 오셨는데, 낚시를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백일장 대회에서 특등으로 입상하게 되었는데 담임이었던 박 선생님이 저를 교무실로 불러 “네가 쓴 글을 보니 소질이 대단하구나. 네 소질을 잘 개발하면 좋은 글을 잘 쓸 수 있으니 더욱 노력하려무나” 라는 칭찬과 함께 격려를 해 주셨다. 그 후 가끔 낚시터를 찾아다니면서, 저에게 김동리 선생을 비롯한, 톨스토이 문학과 헤밍웨이의 문학세계를 비롯해 문학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주셨다.
이처럼 희망이 없던 시골 소년에게 칭찬하나가 오늘날의 부족한 제가 있게 한 것처럼, 이제 제가 할 일은 다른 사람을 위해 칭찬과 격려를 통해 새로운 세대에게 꿈과 비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깊게 가지면서 업무에 임하려고 한다.
박헌성 발행인을 비롯한 동역자 여러분들과 함께 세계복음신문이 한단계 엎그레드할 수 있도록 신발끈을 굳게 잡아매는 심정으로 문서선교 사명에 진력을 다하려고 다시한번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이제 고목에서 새싹이 나고 푸른 잎줄기가 풍성하도록 동역자 여러분들의 더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세계복음신문 사장 정요한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