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4, 2026

[손승복 목사 칼럼] “나는 누구인가 – 피조물의 자리에서 비로소 보이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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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복 목사(GAWPC 서울노회)

사람은 평생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 가족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청년이 되면 학력과 직업과 능력으로 자신을 설명하려 한다. 나이가 들면 살아온 경력과 성취, 재산과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이루었는가. 얼마나 가졌는가.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러다 보니 우리도 어느새 이러한 것들로 자신의 존재 가치까지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에 대한 질문을 전혀 다른 자리에서 시작한다. “당신은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당신은 누구에게서 왔는가.”

창세기는 인간이 스스로 존재하게 된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로 존재하게 된 피조물이라고 선언한다. 인간은 자기 생명의 원인이 아니며, 자신이 살아갈 궁극적인 목적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 1:27). 이 사실은 언뜻 인간을 낮추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의 존엄은 인간이 스스로 위대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가치는 재산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학벌이나 지위, 건강이나 생산성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태중의 생명에서부터 노년에 이르러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순간까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존엄하다. 이것이 개혁신앙의 인간 이해에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존엄을 설명하는 동시에,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율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생각할 수 없도록 하는 기준으로 다루어진다. 인간의 존엄은 스스로 자신을 완성할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창조적 기원에 근거한다.

오늘 시대는 인간의 존엄을 많이 이야기한다. 그것 자체는 귀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을 창조주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하여 설명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쉽게 자기 자신을 삶의 최종 기준으로 삼는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옳다.”,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말들은 자유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최종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성경은 인간을 의지도 없고 선택도 하지 못하는 기계와 같은 존재로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각하고 선택하며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인격적 존재다. 그러나 타락 이후 인간의 자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인간은 일상의 수많은 일을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지만, 죄 아래 있는 인간이 자기 의지와 능력으로 하나님께 돌아가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다. 타락은 인간의 의지를 없애 버린 것이 아니라 그 의지의 방향을 하나님에게서 자기 자신에게로 굽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참된 자유는 창조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는 것을 자유라고 할 수 없고, 나무가 뿌리내린 흙을 떠나는 것을 해방이라고 할 수 없듯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참된 자유일 수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존재의 자리를 발견한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의 첫머리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을 긴밀하게 연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을 바라볼 때 쉽게 스스로를 크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엄 앞에 설 때 비로소 자신의 피조물성과 한계, 그리고 죄로 인한 비참을 발견한다. 이것은 인간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자기 비하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자기인식이다.

참된 자기 이해는 자기 내부를 끝없이 들여다보는 심리적 탐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시 앞에서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왜 존재하며, 지금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삶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진다. 내가 가진 능력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이다. 내가 누리는 시간도 받은 것이다. 건강도, 가족도, 재능도, 물질도, 기회도 영원히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다.

그렇다면 삶은 소유가 아니라 청지기적 책임이 된다. 돈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해지고, 높은 자리에 있느냐보다 그 자리를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지식이 얼마나 많으냐보다 그 지식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어떻게 섬기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의 삶 전체와 연결된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일이 아니다. 직업을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소명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경제생활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두며,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한 사람의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 장애가 있다고, 병들었다고, 늙었다고,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인간 이해는 여기에서 낭만적인 인간 찬양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인 동시에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존재다.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여전히 사고하고 판단하며 문화를 만들고 사회를 이루어 간다. 그러나 죄는 인간의 지성과 의지와 감정과 욕망을 포함한 존재 전체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왜곡하였다. 개혁신학이 말하는 전적 타락은 인간이 가능한 모든 악을 언제나 행한다는 뜻이 아니다. 죄가 인간 존재의 어느 한 부분만을 건드린 것이 아니라 지성과 의지, 감정과 욕망, 관계와 삶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놀라운 학문과 예술과 문명을 이루면서도 동시에 탐욕과 폭력과 거짓과 전쟁을 만들어 낸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인간에게 지성과 도덕적 판단, 문화 형성의 능력이 남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바르게 질서 잡혀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것이 성경이 인간을 바라보는 깊이다. 인간을 무가치한 존재로 짓밟지도 않고, 인간의 가능성을 무한히 낙관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지만 타락했고, 창조의 영광을 지닌 존재이지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그 형상을 온전히 회복할 수 없는 존재다.

여기에 인간의 비참이 있고, 동시에 복음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인간의 문제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조금 더 노력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자기계발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회복을 인간 자신의 손에 맡기지 않으셨다. 참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고,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을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새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신다(엡 4:24, 골 3:10).

그러므로 개혁신앙의 인간론은 결국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간다. 창조를 말하면서 타락을 말하지 않는다면 인간을 지나치게 낙관하게 되고, 타락만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말하지 않는다면 인간을 절망으로 몰아가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타락–구속–회복의 전체 이야기 속에서 인간을 바라본다. 우리가 존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셨기 때문이며, 우리가 죄인인 것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고, 우리가 다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속하시며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깊은 대답은 내가 가진 이름이나 직업, 학력이나 재산에 있지 않다. 나는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다. 그러나 나는 죄로 말미암아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난 타락한 존재이며, 내 힘으로는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존재다. 그리고 복음 안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필요로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가야 할 존재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내 삶은 내 마음대로 소비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생명은 하나님께 받은 생명이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할 책임 있는 생명이다.

신앙의 길은 여기에서 다시 시작된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내려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자리를 찾는 것.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죄로 잃어버린 참된 인간다움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해 가는 것. 어쩌면 참된 자유는 인간이 끝없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창조주 앞에 피조물로 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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