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26, 2026

[손승복 목사 칼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식에서 경외와 순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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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복 목사(GAWPC 서울노회)

우리는 사람을 안다고 말할 때, 여러 의미로 그 말을 사용한다. 이름을 알고, 얼굴을 알고,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면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안다”고 말한다. 그의 기쁨과 아픔을 알고, 어떤 말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싫어하는지 알며,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헤아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성경의 여러 교리를 알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그의 말씀과 행하심을 통해 알고, 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와 삶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첫머리에서 인간의 참된 지혜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에 거의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 두 지식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자신을 바르게 알기 어렵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조금 정직하고,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교회에도 열심히 다닌다면 스스로를 의로운 사람처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기준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했다(사 6:5).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보인 것이다.

욥도 그러했다. 그는 고난 가운데 수많은 질문을 하나님께 던졌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을 때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되는 순간 인간은 자기 능력과 의로움과 지혜를 이전과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이 점은 『기독교강요』 전체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다루어진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인간 자신을 바라보는 기준과 빛이 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은 그 빛 앞에서 비로소 생겨난다. 인간이 자기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아서 하나님께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실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이 점은 오늘 우리의 신앙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자신을 돕는 분으로만 생각한다. 사업이 잘되도록 도와주시고, 자녀가 잘되도록 지켜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찾는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구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신앙이 거기에서 멈춘다면 하나님은 어느새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생명을 얻었고, 그분의 뜻 안에서 존재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도록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갈수록 신앙의 질문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주실까”를 묻던 사람이 점차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묻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는 그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신앙은 자기중심성에서 하나님 중심성으로 옮겨 간다.

칼빈의 신학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인간 존재의 좌표를 바꾸는 사건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종교적 개념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지으시고 붙드시며 판단하시고 인도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간다는 것, 곧 Coram Deo의 삶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개혁신앙의 중요한 출발점이 있다. 신앙은 하나님을 나의 삶에 끌어들이는 일이 아니라, 내 삶 전체가 이미 하나님 앞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 일이다.

주일 예배의 자리만 하나님의 면전이 아니다. 가정도, 직장도, 거래의 자리도, 아무도 보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도 하나님의 얼굴 앞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결코 머리에만 머물 수 없다. 그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의 삶도 거룩함을 향하게 되고, 그분이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의 판단과 행동도 정직함을 요구받는다. 그분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임을 알면 우리는 받은 자비를 이웃에게 흘려보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지를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를 절망시키기 위한 지식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의와 자기 구원의 가능성을 내려놓고 우리 밖에서 오는 의와 생명, 곧 그리스도를 찾게 하는 지식이다.

필자도 바로 이 자기 인식이 인간을 중보자에게로 이끄는 『기독교강요』 제2권의 문을 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하나님에 관한 수많은 정의로 시작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그 빛 아래 인간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도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하나님께 무엇을 받을 것인가를 묻기에 앞서, 나는 과연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그 두 질문이 바르게 세워질 때 비로소 복음의 길이 우리 앞에 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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