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세상이 교회를 떠나기 전에, 교회가 먼저 교회다움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교회의 위기를 세속화된 사회와 시대의 변화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보다 사람과 제도가 앞서고, 복음보다 성장과 성공을 추구하며, 섬김보다 교권과 명예와 물질을 지키는 일이 중요해졌다면 세상을 탓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말씀 앞에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대답은 새로운 데 있지 않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교회에 갈등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교회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초대교회에도 갈등과 분쟁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구의 권위 아래에서 해결하는가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서로를 세상 법정으로 데려가는 모습을 보며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고전 6:5)고 책망하였다. 오늘의 교회 역시 이 말씀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권과 재산과 명예를 둘러싼 분쟁이 세상 법정으로 이어질 때 단지 누가 이겼는가만을 물어서는 안 된다. “그 싸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물론 폭력과 학대, 횡령과 같은 범죄까지 교회 안에서 덮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며 국가의 정당한 사법질서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 있다. 칼빈 역시 『기독교강요』에서 교회의 영적 통치와 시민정부를 구별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분명하다. 교회는 과연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다스림 받고 있는가.
교회는 인간이 세운 종교단체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이며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물어야 할 것은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보다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가”이다.
[다시 말씀 아래로] 종교개혁의 근본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는 교회의 최종 권위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교황도, 인간의 전통도, 시대정신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Sola Scriptura, 곧 오직 성경을 외쳤다. 오직 성경이라는 고백은 단순히 성경을 믿는다는 선언이 아니다. 교회의 신학과 설교와 예배와 정치와 권징, 목회자와 성도의 삶까지 모두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어야 한다는 고백이다. 칼빈이 『기독교강요』 제4권에서 교회의 통치와 권징을 중요하게 다룬 것도 이 때문이다. 권징은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죄인을 회개로 인도하고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영적 질서이다. 따라서 교회의 참된 권위는 직책이나 재산, 교인의 숫자나 건물의 크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말씀에 대한 신실한 순종에서 나온다.
[종교개혁은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단순한 제도개혁이 아니었다. 교회를 다시 성경의 권위 아래 세우고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복음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백한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오직’은 종교개혁의 역사적 표어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의 교회와 신앙을 판단하는 기준이어야 한다. 우리의 설교는 정말 성경에서 나오고 있는가.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가. 교회의 성장과 우리의 명예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있는가.
[개혁의 칼날은 먼저 나를 향해야 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첫머리에서 참되고 건전한 지혜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참으로 알아갈수록 인간은 자신의 죄를 보게 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우리의 불의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교만이 무너지며,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참된 개혁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아내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죄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그래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교회의 세속화를 비판하면서 나는 세상의 성공에서 자유로운가. 물질주의를 책망하면서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가. 목회자의 명예욕을 말하면서 나는 사람의 인정을 구하고 있지 않은가. 교회의 분열을 걱정하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형제를 사랑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피해 가면서 종교개혁을 말할 수는 없다. 개혁의 칼날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 자신을 향해야 한다. “저 교회가 변해야 한다. 저 목회자가 변해야 한다.” 그 말보다 먼저 드려야 할 기도가 있다. “주여, 먼저 나를 말씀으로 고쳐 주옵소서.”
[교회여, 다시 교회가 되라]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다음 세대와 선교, 미디어와 새로운 목회전략을 말한다.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교회가 다시 교회가 되는 것이다. 강단에서는 사람의 성공과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종교적 성공을 이루는 경영자가 아니라 말씀과 기도로 양 떼를 섬기는 목자로 서야 한다. 성도는 종교의 소비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살아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성공을 닮아 인정받으려 하기보다 거룩함과 사랑과 진리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조차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종교개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개혁교회가 “우리는 이미 개혁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개혁신앙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교회는 언제나 말씀의 교정 아래 있어야 한다. 말씀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전에 그 말씀이 먼저 우리를 판단하게 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온전히 살아내지 못했던 그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에게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로. 그리고 그 개혁은 거대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무릎 꿇는 한 사람의 회개에서 시작될 것이다. 목회자가 먼저 무릎을 꿇고, 장로가 무릎을 꿇고, 성도가 무릎을 꿇을 때 교회는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우리 자신에게 묻자. “주님, 우리는 정말 주님의 교회입니까?”
그 질문 앞에서 다시 성경을 펼치자. 사람의 목소리를 낮추고 말씀의 음성을 듣자. 우리의 이름을 낮추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자. 교회여, 다시 말씀 앞에 서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