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7, 2026

기독교적 세계관 형성이란…“가정, 사랑, 충성심까지 아우르는 심오한 의미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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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 형성

‘세계관’이라는 개념을 기독교인들이 처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현재의 이 개념은 유럽 철학에서 비롯됐다. 기독교적 세계관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이들은 이를 문제 삼기도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주변 문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성경에 비추어 바로잡은 뒤 진리에 적용해 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두고,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날 때 금과 은을 가지고 나온 출애굽기 이야기를 인용하여 “이집트의 것을 취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도 ‘세계관’이라는 유용한 개념을 받아들여 이를 기독교적 관점에 맞게 수정했다. 사실, 이 용어를 기독교화하는 과정에서는 두 가지 사항이 크게 작용했다.

첫 번째는 우리의 세계관이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디어보다 더 깊은 차원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수많은 사안에 대해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신념의 기저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더 근본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예수님 부활의 경우, 예수님이 육체적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는지에 대해 기독교인과 유물론자 사이에는 여러 이견이 존재하지만, 그 기저에는 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누군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는 우주의 자연적 힘보다 더 강력한 신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크게 달려 있다. 인간은 창조된 존재인가, 아니면 토머스 홉스가 처음 제시했듯이 단지 움직이는 물질에 불과한 존재인가에 대한 생각이다.

초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는 사람들은, 증거 검토를 시도하기도 전에 이미 부활을 배제해 버린다. 이러한 더 깊은 차원의 전제들이 바로 ‘이론 이전의 신념’이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생각에 앞서, 이미 세상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특정한 전제를 바탕으로 사고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그 첫 구절에서부터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전할 율법을 모세에게 주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신을 섬기던 문명인 이집트에서 막 벗어난 상태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침을 주시기에 앞서,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이해를 먼저 제시하셨다. 바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이다.

사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신학, 우주론, 그리고 인간관을 주신 것이다. 창조는 경쟁하는 신들 간의 갈등으로 빚어진 산물이 아니다.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 창조 질서를 세우시고, 목적이 있어 그것을 ‘좋다’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고 말씀하셨다. 대대로 노예 생활 속에서 정체성이 형성된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의미였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단지 파라오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그분의 창조 세계 안에서 책임을 부여받은 존재다.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며 책임지게 하는 문화명령을 주신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안겼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이해… 세상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 .“ 이것이 바로 세계관이다. 그리고 성경의 맨 첫 장에 바로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로, 기독교인들은 훗날 현대의 세계관 개념에 또 하나의 중요한 성경적 수정을 더했다. 인간은 단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다.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만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사랑하는 것에 따라 세상을 본다.

로마서 1장은 하나님의 실재가 그분이 만드신 것들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지만, 타락한 인간인 우리는 “진리를 억누른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에게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죄는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우리의 능력과 의지에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일은 단순히 생각을 바로잡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 존재 전체를 구속(회복)하시고자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장 큰 계명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두 번째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세계관은 백지 위에 도식화된 철학이 아니다. 인간이 실재를 마주하는 더 깊은 차원의 틀이며, 인간 존재 전체가 관여하는 영역이다. 죄는 우리의 생각 뿐만 아니라 행동과 사랑의 대상까지 어지럽히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시킨다.

그렇기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형성한다는 것은 곧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이다. 이는 올바른 생각, 새롭게 변화된 마음, 올바른 사랑, 그리고 올바른 대상에 둔 충성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또한 하나님의 세상을 진실하게 바라보고,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함께 사랑하며, 그분이 창조하신 현실 속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될 때 진정한 믿음의 진수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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